5번째 회사를 앞두고 작성한 글로 작성된 지 이제 1년이 다 되어 가는 내용입니다. 퇴고하며 단어를 고른 것 외에는 당시 작성했던 내용을 최대한 유지했습니다.
머리말
4번의 이직을 거쳐 5번째 회사를 앞두고 있다. 많은 사람이 언제 이직을 하면 좋을지 고민하며 다른 사람들은 왜 이직하는지를 궁금해한다. 이 글은 각자의 상황과 사정이 다르기에 통용될 수 없는 이야기이자 면접 과정에서만 푸는 나의 내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커리어를 고민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다른 사람의 의사결정 과정을 참고하여 조금이라도 결정에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 이 글을 적는다.
나의 이직
현재 약 2년 3개월 동안 재직한 4번째 회사를 마무리하며 5번째 회사의 입사를 앞두고 있다. 7년의 시간 동안의 일인데, 그 때문인지 누군가에게는 프로이직러 소리를 듣기도 했다. 그래도 1년을 채우지 못한 회사는 없었고 감사하게도 떠날 때면 늘 고생 많았다며 축하한다는 응원의 말씀들을 해주셨었다.
잦은 이직으로 점철된 이력서는 차후에 좋지 못하다는데, 개발자인 덕인지 아니면 평균 21개월의 재직 기간 덕분인지 별로 문제가 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평생직장이 사라진 것이 보편화된 요즘, 각 이직에 대한 이유를 명확히 설명할 수 있으면 큰 문제가 안 될 것 같다.
첫 번째 이직
"SI에서 경험을 위해!"
내 첫 회사는 산학협력으로 졸업 전 인턴으로 다니던 한 네트워크 보안 업체였다. IP와 MAC 주소를 통해 특정 기기의 네트워크 접근을 제어하는 보안 SW업체였는데 Classic ASP, C++, Spring Boot, php 등의 언어를 사용해서 고객사에 맞춘 커스터마이징을 하거나 마이그레이션 하는 등의 작업을 진행했다.
그 때 나는 어떤 개발자가 되고 싶은지 몰랐다. 그냥 하루하루 회사에서 할당받은 과업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좋은 기회로 외부에서 리액트를 사용한 프로젝트를 경험할 일이 생겼고, 여기서 프론트엔드 개발자로 마음이 뺏겨버렸다. 컴포넌트 추상화, 선언적 프로그래밍 등 개발의 재미를 다시금 느끼며 조금씩 어떤 개발자가 되고 싶은지를 알게 되었다.
재직하던 회사에서는 그 길을 걸을 수 없었기에 이직을 결심하게 되었다. 그렇게 다음 회사를 찾다가 SI 회사에 들어가면 리액트를 비롯하여 앵귤러, 뷰 등 당시를 대표하던 다양한 SPA 프레임워크들을 사용하여 많은 프로젝트를 경험하고 제품을 배포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렇게 두 번째 회사로 한 SI 업체에 입사했다.
두 번째 이직
"스타트업에서 서비스를 개발하기 위해!"
두 번째 회사는 SI 업체로 외부 프로젝트에 파견을 보내기도 하고 사내 시스템 개발을 준비 중이기도 했다. 팀에서 혼자 SM 업무로 배정되어 고객사 담당자분과 둘이서 1년 가까운 시간을 일하며 Java로 된 시스템을 전사 시스템 업그레이드에 맞춰 수정하기도 하고, 이후 다른 곳에서는 앵귤러를 활용한 앱 내 웹뷰 서비스를 개발하기도 했다.
여기서 나는 처음 생각과 다른 점을 느꼈다. 분명 많은 길을 걸을 수 있는 환경이었지만, 그 어느 길 위에도 내 목적은 찾기 어려웠다. 첫 프로젝트로 개발이 아닌 유지보수 프로젝트를 배정받은 영향도 있었을 것이고 다른 대부분의 외부 프로젝트에서도 넥사크로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내가 목표했던 프론트엔드 개발자와는 계속 멀어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 목적지로 향하는 길에 오르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돌고 돌아 닿을 수 있다고 해도 그 나선이 얼마나 꼬여있을지는 모르는 일이다. 얼마나 먼 길이 될지 모르기에 방향을 다시 잡아야 했다. 이 때 운이 좋게도 처음으로 리액트 개발을 같이했던 분께서 작은 스타트업에서 프론트엔드 팀을 리드하고 계셨는데, 먼저 합류를 제안해 주셔서 빠르게 다음 시도를 할 수 있었다.
세 번째 이직
"시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타트업 문화 속 프론트엔드 개발자로 일하며 Next.js 버전을 마이그레이션하고, 사이트를 리뉴얼 하는 등 많은 작업을 할 수 있었다. 비록 코로나로 회사는 어려웠지만, 다시 황금기가 도래할 그날까지 살아남기 위한 많은 작업들을 진행하며 프론트엔드 개발자라는 내 꿈을 재확인하기에는 충분했다.
이직에 대한 후회는 없었다. 대부분 재택근무를 하면서 스스로 업무 정리하는 방식을 터득하고, 노션으로 글을 쓰는 것에 익숙해지고, 성장과 생산성에 대해 계속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서울에서 자취를 시작해 주말에는 카페에 나가 작업을 하기도 하고, 한강에서 러닝이나 자전거를 타기도 하고, 자기 계발 클럽을 통해 사람들과의 유대와 동기부여를 느끼며 외롭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
다만, 그동안 내 의지로 했던 이직과는 달리 결국 회사 사정으로 다음 회사를 알아보게 되었다. 문화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회사가 지속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어떤 시장에서 무슨 문제를 해결하는 서비스인지, 회사의 BM은 어떻게 되는지, 실제 수익으로 이어지고 있는지를 생각해야 했다. 어떤 가치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스타트업인지를 고려하며 여러 곳에 지원하기 시작했다. 팀장님의 응원과 배려 덕분에 재직 중에도 조금씩 준비할 수 있었고, 두 곳에서 오퍼레터를 받아 그중 한 곳으로 최종 입사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최종 입사 결정을 한 곳은 취업 플랫폼을 통해 면접 제안이 왔었던 곳이었다. 처음 보는 회사 서비스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하고 면접 경험을 쌓기 위해 진행했는데 최종적으로 대표님과의 1:1 면접 단계에서 입사로 마음이 많이 기울게 되었다. 경영진이 해당 도메인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풍부하고, IT 적으로 낙후된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해 나가며 빠르게 시장을 장악할 수 있는 플랫폼이라고 생각했다. 이후 수직적인 문제를 해결하며 모은 압도적인 사용자 점유율을 바탕으로 서비스를 넓게 확장할 수도 있었으며, 전체 시장의 규모도 크고 안정적이고 미래 가치도 뛰어났다.
네 번째 이직
"책임과 자유, 그리고 새로운 도전을 위해!"
처음 기대에 부응하듯 꾸준히 가파르게 성장하는 회사와 발맞춰 경험 많은 동료분들과 정말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다닌 4개의 회사 중에 단연 압도적이었다. 신규 프로젝트의 웹 개발을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서 담당하기도 했고, 전시-검색-주문-할인-결제-배송-반품 과정 및 이벤트와 멤버십 등 이커머스의 많은 서비스를 경험할 수 있었다.
어느덧 상장까지 가시화되었고, 사람들과 문화에도 적응해서 큰 어려움 없이 회사에 다녔다. 그런데 나는 이 편안함 속에서 기이한 불편함을 느꼈다. 어느덧 7년을 지나 두 자릿수의 경력을 향해 가는데 현재 환경에 적응해 버린 나는 더는 시장 가치가 없어지는 것이 아닐까? 다른 곳에서도 시니어라 할 수 있게 될까? 그러면서 나는 교체할 수 있는 부품이 되어가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분명 다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게 다 똑같아만 보였다.
이런 개인적인 불안함 속에서 사이드 프로젝트로 나만의 블로그 공간을 만들고, 글을 쓰기 시작했으며, 글또 커뮤니티나 가벼운 스터디를 통해 회사 밖에서 다른 활동들을 이어갔다. 종종 이력서를 다듬어 지원하고 또 떨어지며 개인적으로 부족한 점을 찾아 개선하고, 회사 내에서는 어떻게 같이 일을 더 잘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회사의 업무와도 선순환을 일으키고 불안감 해소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지만, 다른 세상을 알게 될수록 안정 속에서 목마름은 계속되었다. 하나를 알게 되면 열 가지를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나는 알게 된 한 가지를 통해 다시 열 가지를 궁금해하는 사람이었다.
그래도 조급한 마음 없이 나에게만 신경을 썼다. 1년 동안 서너 군데에 지원하고 탈락하고 또다시 준비했다. 기회는 준비하는 자에게 찾아온다는 말을 믿으며 언젠가 올 순간만을 생각했다. 그게 1년이 걸리든, 2년이 걸리든 상관없었다. 지금 회사에서 일하는 것도 회사의 성장세도 모두 좋았으니까 괜찮았다.
그렇게 회사의 중요한 신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일에만 열중하던 시기에 한 통의 메일이 도착했다. 내가 블로그에 발행한 지 1년도 더 된 글을 보고 커피챗을 진행하고 싶다는 요청이었다. 내 글을 읽어봐 주시고 관심 가져주신 것이 감사하기도 하고, 해당 회사에 대한 궁금함도 있었기에 흔쾌히 커피챗을 진행했다. 이후 대화는 즐거웠고 좋은 분위기 속에 입사 프로세스까지 진행하게 되었다. 나는 이 회사 앞에서는 어떤 가치가 있는 사람일까가 궁금했던 마음이 제일 컸던 것 같다. 그리고 이 기회는 최종 입사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사실 프로세스를 진행하면서도 또 최종 합격 메일을 받고서도 계속 걱정되긴 했다. 기존의 안정을 모두 버리고 다시 새로운 곳에서 적응하고, 도전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꽤 오래 걱정했지만, 이번 이직의 이유를 나 스스로에게 명확히 설명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 끝에 해결되었다.
이번 이직을 통해 자율과 책임 아래 제품에 대한 집착, 적극적인 피드백과 공유 문화를 통해 시장 지배력이 있는 제품을 만들며 개인적으로도 더 성장할 것이고 이는 앞으로 20년도 더 남은 내 커리어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 기대한다.
내가 나한테 한 설명은 나를 설득하기에 충분했다.
이직 시 고려하는 점
모든 이직은 다른 상황을 수반하고 인생의 큰 변화를 야기하기 때문에 쉽게 결정 내리기 어렵다. 4번의 이직을 경험하는 동안 나는 이직 시 어떤 점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 스타트업일수록 회사가 어떤 서비스를 하고 있는지?
- 그 시장의 총 규모가 어떤지?
- 시장에서 어떤 위치인지?
- 경쟁사는 어디인지?
- 혁신을 만들어내는지?
- 내가 어떤 일까지 할 수 있는지?
- 어떤 문제를 해결하게 될지?
- 팀이 어떤 문제를 해결해 왔는지?
- 특정 기술 프레임워크는 중요하지 않다. 단, 기술적으로 어떤 시도를 하고 있는지는 중요하다.
- 내 커리어를 설명하며 이직 사유에 관해 설명할 수 있는지?
- 지금 이직을 한다면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 합리적인 보상 체계가 존재하는지?
- 금전적 보상 외에 복지 및 근무 환경 등은 어떤지?
- 일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주는지?
- 편하게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는 조직문화인지?
- 사람들과 웃으며 다닐 수 있는지?
꼬리말
"나는 고작 나답게 살기 위해 얼마나 먼 길을 돌아왔나"
좋아하는 소설인 <광마회귀> 속 문장인데 내가 꽤 좋아하는 문장이다. 인생은 처음이라 돌고 돌며 나의 길을 찾아가는 중이다. 아직도 '나답게' 라는 게 어떤 것인지 모르겠다. 그 속에서 선택은 계속 흔들리고 후회와 미련은 계속 나를 따라오지만, 후회 또한 다음을 위한 발판이 되기를, 시간이 지나도 계속 도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그렇게 나답게 살다 갈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는 누군가의 용서와 배려, 다정함 속에 살아가고 있다. 행운이라 생각한 많은 것들은 내 노력과 주변 사람들을 통해서 온다. 이걸 잊어서는 안 된다.